닮았다.
성민이는 내성발톱을 앓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부터였던가~~
군대에서도 내성발톱때문에 힘이 들었었고, 대학에 복학을 하고 작년 일 년동안 방송국 국장을 하면서 치루어 내야 할 많은 행사와 일정들 속에서 증상이 심해졌고, 가을 부터는 부쩍 내성발톱을 어쩌든 해결을 해야 겠다고 아이와 통화를 할 때마다 이야기 하곤 했었다.
그러면서 그 끝에는 미안함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내가 내성발톱 증상이 없는데 아이가 그러한 것에 대해 철없고 미숙한 엄마였던 내가 성민이의 발톱을 너무 짧고 깊게 잘라내어 아이가 뒤늦게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니, 후회란 이런 것인가 하는 자책으로 마음이 좀은 무거웠었다.
급기야, 겨울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와 있다가 성민이는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날에는 절룩거리고 다닐 만큼 심하게 곪고 고통스러웠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들었지만......,
구정이 되었다.
작년 한 해 부쩍 몸의 관절들과 크고 작은 수 많은 일상들이 큰 형님을 타겟으로 한 것처럼 공격적으로 타격을 해왔고, 큰형님의 육신은 무력하게 감내해내고 이겨낼 도리밖에 없는 듯 힘에 겨워 하셨다.
별 다른 도움도 될 수 없이 이런 저런 이유들로 설 아침 일찍 서둘러 형님댁에 도착하고 형님이 준비해 놓으신 제수 음식과 내가 준비해간 전과 나물들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먹기 위해 형님 댁 거실에 앉고 보니 예전의 웅성했던 그 식구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아주버님과 형님, 우리 집 장손 정민, 우리부부와 성민이와 재영이......, 채 열명도 되지않는 단촐한 가족이 모여앉아 나물비빔밥과 탕국을 먹고 있었다.공연히 쓸쓸한 이 헛헛함이라니......,
ㅋ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아주 오랜 자책을 덜어내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주버님도 정민이도 내성발톱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성민이는 서울 작은 아주버님을 많이 탁했다.
비교적 몸에 털이 없는 아빠와 달리 털이 많은 것, 애연가인 아빠를 닮지 않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것 등등.
그런데 이 녀석 영동 큰아주버님과 사촌 형인 정민을 닮아 내성발톱이었다니~
모두들 참 어이없게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 형제의 어떤 것을 닮는 지 참 혈연이란 대단하고 대나나다고 웃으며 식사를 했다.
아마도 이제 삼형제가 모두 모여 웃으며 제사 음식을 준비하며 시끌벅적한 그러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마냥 즐거운 일만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 한 편의 드라마가 끝난 것 처럼 마음 한 켠이 쓸쓸한 것은 나의 나이듦, 형님들과 아주버님들의 노쇄함과의 마주함이 서글픈 탓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1988'의 ending의 그것처럼 살아감이란 돌이킬 수 없는 어떠한 것들을 놓아가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
그리움.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와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 .
큰 산 같고 푸르렀던 아주버님과 다 품어줄 것만 같았던 젊었던 형님들~~
내가 마냥 철없어도 될 것만 같았던 세월은 아마도 추풍령고개에 두고 온 듯하다.
그것 역시 그리움.
어머니가 계셨던 어느 구정이었겠지.
저 많은 가족들을 담아내느라 힘겨웠을 형님의 고충을 조금밖에 짐작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나간 모든 것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