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이브 크라메르를 기리며...
꿈꾸는 나비, 파피용
파피용!! 흑백의 기억 속에서, 죄수복을 입은 채 절벽을 딛고 날아 바다로 뛰어든 스티브 맥퀸, 바다 저 편으로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던 쓸쓸한 눈빛의 더스틴 호프만..그리고 애잔하게 흘러나오던 'free as the wind'. 영화 ‘빠삐용’과 베르베르의 ‘파피용’.
감옥을 탈출해서 자유를 찾아가는 한 인간 빠삐용과, 모든 것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지구를 떠나 우주로, 무려 천년의 여행을 감행하는 ‘파피용이라는 우주선을 선택한 14만 4천명의 지구인들.
인간의 자유로 향하는 의지와 욕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고 결국엔 그 꿈을 실현하게 하는 능력을 발휘하게까지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먼저 그들의 무모하고도 위대한 용기에 갈채를 보낸다. 보통의 삶을 사는 인간 이라면 절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행동을 취하는 저들은 실로 용감하다.
홀연히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나아가면서 ‘어머니 지구’에게 안녕을 고하는 그들의 미래. 그들이 창조해낸 앞으로 1251년의 역사는 눈을 가리고 싶을 만큼 아찔하다.
그토록 철저히 가려냈건만 거대한 우주선 ‘파피용’ 호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행태는 굳이 ‘파레토의 법칙’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구의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된다.
이 황당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브, 엘리자베트, 맥나마라......, 이들이 바라는 이상향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뢰는 첫 번째 범죄가 일어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헌법을 만들고, 정부와 경찰이 탄생하고, 감옥이 생기고, 긴장을 해소하기위해 카니발을 열고 옛 지구에서의 생활이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프로젝트의 발기인들이 모두 죽고 그들이 품었던 ‘유토피아적 사회’의 실현은 너무나 허무하게 그들이 지구를 떠나 온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과 그들이 이루어 냈던 꿈의 실현이 그 의미조차 아무도 모른 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지는 것에 분노보다 차라리 슬프다는 느낌이 앞선다.
평화 다음에는 전쟁.
의회 다음에는 독재.
안정 다음에는 광란.
학살 다음에는 출생, 위대 왕, 광신 왕, 관용 왕, 유혈 왕, 현자에 이어 독재자......,
지구의 그것과 다름없이 우주선 파피용의 역사는 힘겹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1251년에 살아있는 여섯 명의 생존자, 그리고 또 걸러진 2명의 남과여. 새로운 행성에서 최초의 인류로 살아남을 그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적응해 살아가려니 했더니만, 진실로 어이없게도 성행위의 체위문제로 다투고 헤어지고 여자는, 단 한명 생명을 잉태할 수 있었던 최초의 유일한 여자는 돌연변이로 독이 생긴 뱀에게 물려죽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려 1250여년이나 흐른 이때에 ‘이브 크라메르’를 향해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이 나오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왜 그 많은 시간동안 아무도 그를 기억해내서 그의 숭고했던 정신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일까?
단 한 명의 남자 아드리앵은 기막히게도 수술도 하고, 수정란 이식도 하고 세포분열도 시키고, 그리고 아이를 만들어냈다. 아빠라고 부르지 않을 여자아이를 자신의 한 쪽 갈비뼈로 말이다.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마지막에 그렇게 전능한 그가 아이와 함께 지구가 있을 방향을 바라보며, “영원히 탈출할 수는 없다.”고 하는 그의 독백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헛발을 디딘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과 그 과학에 접목시켜 이루어낸 기술력은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해박한 과학적 지식에 또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성서에 나오는 이브와 똑같이, 또 남자의 갈비뼈로 탄생되는 어쩌면 새로운 인류의 최초의 어머니나, 그에 앞서 엘리자베트는 왜 하필 뱀에게 물려 죽는지, 기독교도가 아니어서 그런지 나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그의 상상력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난데없이 나타나 착륙선을 타고 파피용을 떠나는 ‘사틴’의 등장 또한 작가의 의도가 보여 염려스러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흥미롭다.
꿈을 꾸는 자만이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외침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자신의 세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드디어 진정한 세상을 보게 되는 최고의 요트선수 ‘엘리자베트 말로리’의 변화도 그렇고, 화학연료가 아닌 빛에너지를 활용해 우주선을 운행하는것, 우주선 안에서 만들어 유일한 교통수단이 된 나무 자전거 등은 자꾸만 황폐해져가는 지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다.
〈다시는 우리 자손들이 똑같은 실수를 무한정 되풀이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