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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수술 후 6주~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벌써 나의 일상은 수술하기 전, 

아니 유방암 판정을 받기 전과 별다르지 않다.


5월 27일 수술을 하기 위해 그 전 날인 5월 26일 정오쯤 병원으로 갔다.

동생들이 와 주어서 점심을 먹고 병실로 와서 입원수속을 하고 나는 환자복을 입었다.

남편과 큰아이. 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늦은 오후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성형외과 의사에게서도 유방성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70세(나중에 알았다)라는 아주머니 한 분과 같이 젊은 남자의사에게서 수술의 방법과 장단점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지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 

나는 나의 병을 절감했다.

암의 치료가 우선이므로 성형은 추후에 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서명을 했다. 

설마 전절제를 하겠어? 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병실로 돌아와 화장실 거울을 보고 내 두개의 가슴사진을 남겼다.


다음날 지루한 기다림이 있었고 

오후 3시 13분 나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남편이 큰아이에게 "성민아 지금 몇시야?", "3시 13분!"

차갑고 서늘한 공기, 더 차가운 느낌의 스탠기구들과 그 부딪힘, 어수선하고 생경스러운 소란스러움, 초록색가운들의 분주하고 낯선 움직임......,

그 속에서 나는 까무룩해졌다.

........,

눈을 떴을때 수술실 벽의 동그란 시계는 6시 10분이었다.

마약성 진통제인 무통주사를 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내내 나는 오열했다. 

무통주사로 인한 구토 증상과 형체를 알 수 없는 진통으로 인해 울다가 구역질하다가 신음을 하고......,

간병을 하기로 한 성민이도 너무나 힘이 들었을 것이었다.

엄마를 위해 3일간 연차를 내고 갼병을 해준 고마운 녀석~

거짓말 같이 다음날은 아프지 않았다. 

배액관과 무통주사를 주렁주렁 달고 나는 병원복도를 걸어다니는 운동을 했고, 잃어버린 내 왼쪽 가슴을 잊어버리기로 했다.


월요일에 수술을 하고 금요일에 퇴원을 했다.

매일 한 시간여를 달려 병원에 오는 남편도 그렇고, 무통주사도 땠고, 더이상 병원에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었다.

"가족들때문이라면 더 입원하고 있다가 휴식 좀 하고 퇴원하세요. 엄마 없는 걸 느껴봐야지!" ㅎㅎ

주치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수술한지 4주도 되기전 남편은 유턴?!했다ㅠ)

배액관(피주머니)을 달고 퇴원을 했고 3일에 한 번 소독을 하기 위해 근처 외과를 갔다.

고등어구이를 먹은 날. 잔치국수를 먹은 날. 장어구이를 먹은 날......,알러지가 두드러졌다.

며칠전에는 성희와 현숙이와 점심을 먹었는데 반찬으로 나온 어묵을 두개 먹었었는데 그 때문인지 또 오른손 약지의 마디가 간지러웠다.

일상은 변함없이 흐르는 듯 보여도 이렇게 나는 피해갈 것이 많아지고 있다.


식단의 문제는 가볍지도 수월하지도 않았다.

평소 야채와 과일을 그다지 즐겨먹지 않았던 우리가족의 식생활은 나의 유방암수술 후 완벽?!하게 바뀌었다.

토마토와 브로컬리 양배추 상추 쌈채소 나물반찬 살코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나는 3.5kg정도 감량이 되었다.

퇴원할 때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 중 체중이 증가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던 것이 생각나 다행이라고 쓰담쓰담했다.


6월11일 예약이 잡혀있었다.

수술 후 조직검사결과를 확인하는 날. 

하루종일 지난한 기다림......,

일단 나의 유방암은 완벽한 1기라고 했다. 상피내암이라고 생각했지만 관을 뚫고 나온 녀석들 몇이 있었던 것이 0기는 확실히 아니었다고, 전절제를 하기전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노라고, 결과적으로 전절제 하기를 잘 했다고 주치의 선생님은 설명했다.

나의 치료방법은 힝호르몬약(타목시펜)을 하루 1알, 5년간 복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감사했다. 

감사했다.

신이 내게 주신 기회라고 나는 감히 생각했다.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