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 글.사진
할배와의 관계 속에서 급한 것은 저밖에 없습니다.
할배는 오로지 당신의 속도로 움직이십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할배의 속도가 도시에서
찌든 저에게는 느리게 보일지라도 자연속에서는 결코 느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장 자크 루소가 그랬지요. "도시는 인류가 뱉어 낸 가래침이다" 라고 말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연장이 넘쳐나며 다시 그것보다 기능이 뛰어난 연장들을 개발해 그것을
대체하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편하지만 더욱 편리해지기 위해 우리가 가지는 것은 시간의 속도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 어떤 기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할배에게
속도란 무의미한 것일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는 오로지 제철이 있는 것이지요.
이맘 때,
또는 하얀 찔레꽃이나 노란 들국화 필 때,
밤이 영글기 시작할 때와 서리 내릴때
각각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어제 오후 퇴근하고 대충 씻고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그의 옆에 앉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거실 베란다를 통해 내다본 하늘이, 전선줄들과 그 사이를 통과해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을지
알 수 없는 바람이 하도 신기하고 반가워서 베란다 입구에 누워 하늘을 보며 이 책을 마저 읽어냈다.
나를 마치 옆에서 뒹구는 애완견 보듯이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하도 정겨워...
문득
아.......참 좋다...싶었다.
성주의 이 할배와 이지누라는 사람의 몇 번의 만남과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활자화 시킨 걸 읽으며 몇 번이나 웃고 또 웃으며
이 책을 읽었다. 아.. 이런 형태의 만남도 가능한 것이구나..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소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소가 가는데로 가시는 할배..
못내 아쉬워도 아쉽단 소리 한 번 안하시는 할배..
말 없음이 때로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노라고 몸으로 보여주신 할배...
참..마음이 지극해지는 책을 오랜 만에 만났다..